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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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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우 수기

힘을 내세요

연분홍 장미가 한껏 아름다워 한 다발 안아 화병에 꽂으려 하니 굵은 가시가 여기저기를 찌른다.
넓은 어깨에 기타를 메고 멋들어진 베이스 성량의 목소리로 찬양 할 때면 스무살의 어린나이인 나의 가슴을 한없이 설레게 했던 그가 나의 남편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목사님 가정과 자녀들을 제일 부러워했던 나는 반려자는 목회자로 꿈꾸어왔던 터라 새로 부임해 오신 전도사님에게 시선이 끌리기 시작했다. 그는 호감이 넘치는 남성다운 얼굴을 가졌고 모든 악기를 조금씩 다룰 줄 아는 멋있는 남자였다.

겨울엔 스케이트도, 여름엔 수영도 잘하는 나의 이상형이었다.
청년들과 게임을 할 때면 늘 벌침을 당하던 약지 못한 성격이었고 즐거울 때는 호탕하게 웃는 그의 웃음소리는 모든 사람들이 백만 불짜리 웃음이라고 부러워 할 정도로 별반 까다롭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 모든 자매들은 전도사님에게 관심을 쏟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누군가 뒤따라오는 것 같아 돌아보니 그였다.
한 달 전에 내가 사는 집 앞으로 이사 왔고 예배 후 집에 돌아가는 길이란다.
우연한 일이였지만 우리는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었다.
어느 날 직장으로 전화가 왔다.
나를 좀 만났으면 좋겠다고................
왜 그렇게 가슴이 뛰고 설레던지 오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집 앞 동네커피숍으로 달려갔다.
그가 먼저 와있었고 테이블엔 한 잔의 우유가 놓여있었다.
한동안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조금 후에 그가 이을 열었고 그에 손에는 하얀 알약들이 들려 있었다.
“나는 환자랍니다. 그래서 아무도 결혼해줄 사람이 없어요.
차 선생님이 저랑 결혼해 주시면 안될까요? “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어려서부터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길 원했고 특히나 나이팅게일의 생애를 흠모했던 나는 그의 청혼을 듣는 순간 그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동행 하는 자 없다면 내가 동행하여 훌륭한 목사님으로 보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그의 청혼을 받아 들였다. 그는 어렸을 때 홀로 큰길 대로에서 놀다가 지나가는 트럭 바퀴에 큰 돌이 튀어서 이마에 맞아 피 흘린 채 쓰러져서 6시간 만에 의식을 차렸다 한다. 그 일이 아마 건강에 문제가 오는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초등학교는 무사히 넘겼는데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와 싸우는 도중에 거품을 내품으면서 쓰려졌다 한다. 그 일 후로 쓰러지는 횟수는 잦아 졌고 어머니는 지방에서 교편생활을 하시는 터라 하숙생활을 하는 그는 쓰러질 때도 혼자였고 의식을 차릴 때도 혼자였다. 같이 놀아주던 친구도 하나 둘 떠나가고 같이 아픔을 나눌 친구도 없이 마음의 상처만 쌓인 채 외로움과 고통이 그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하숙집에서 여러 번 쫓겨났다. 그의 질병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싫어해서란다. 그래도 그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신학 대학에 진학했다. 교회의 부교육자로 사역을 하는 중에 쓰러질 때 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중에 쓰러질 때마다 그는 늘 쫓겨나는 삶의 연속이었다. 아픔의 상처가 쌓일수록 사람을 깊이 하는 닫혀진 성격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여러 번 죽기를 간구했고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에게 믿음이 있었다. 온 세상 사람이 다 버린다 해도 주님은 떠나시지도 버리지도 않으신다는 믿음이 그의 암울했던 환경에서 이겨나갈 수 있게 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우리는 만남이 시작되었고, 그가 쓰러질 때면 옆에서 도울 수 있는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

일년 반 교제 끝에 그를 더 가까이에서 도울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삶은 순조롭지 않았다. 그는 육신의 질병보다도 마음의 질병이 더 컸다. 그 마음의 질병이 열등의식이라는 성격으로 돌출 되었고 매번 별일이 아닌 일에도 거친 성격으로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힘든 삶이었다. 정신적으로, 육신적으로, 피폐해진 그는 잦은 쓰러짐과 거친 성격의 연속으로 나를 한없이 힘들게 했고 친정식구들도 모르게 전혀 모르게 결혼 한 터라 어느 누구에게도 의논도 할 수 없이 밤마다 눈물로 지새우는 삶이 연속되었다. 경제적으로도 무척이나 어려웠다. 밤마다 성전에 가서 엎드려 눈물로 철야기도를 했다.

“ 하나님 !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저를 봐서라도 남편을 치유해 주세요.”

25년을 넘는 눈물의 기도였다.
하나님은 사랑이셨고 나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지금은 아주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아내를 끔찍이 여기고 사랑하는 남편이 되었다.

자녀도 둘이나 선물로 주셨다.
건장한 큰 아들은 선교사가 되기 위해 신학을 하고 있으며 아름답고 예쁜 며느리도 선물로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예쁜 둘째는 딸이다. 파이프 오르간을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는데 러시아 유학을 다녀온 후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아이의 재능이 천부적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긴 터널을 지나온 것 같다 .
남편과 만난지가 어언 30년이 되어간다.
수없이 포기하고 싶었고 감당 할 수 없어서 눈물짓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시청 앞 광장에서 가족들과 함께 찬양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우리의 자녀들이 행복해하는 가정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지금도 힘들어하고 있는 많은 환우들을 생각해 본다.
이제는 그들을 위해 일 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환우들도 낙망치 말고 소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반드시 좋은 열매들이 각자에게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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