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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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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우 수기

우리 딸 인숙이를 보면서

노랗게 물든 단풍잎은 창가에 흩어지고 한알 한알 노랗게 여문 벼이삭은 갈바람에 춤을 추는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풍성한 가을은 겨울에 못 이겨 물러나고 지금은 찬바람과 싸워야할 계절, 바람결에 잠을 깬 나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엄마 옆에서 곤히 잠자고 있는 우리 인숙이(딸아이)를 바라본다. 그런데 왜? 또 눈물이 나올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니까 내 나이 두 살. 난 두 다리 소아마비로 하반신 장애가 되었고 두 다리를 고치려고 가족들은 여러 병원을 가보았지만 아무 효과도 나타나지 않고 마비된 상태 그대로 하반신 장애가 되었다. 그때 나는 한번만이라도 걸어 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뭔가를 붙잡고 일어서려 애썼지만 마비된 두 다리는 힘이라곤 없고 새끼 강아지처럼 방에서만 기어다니며 눈물과 외로움으로 지겨운 하루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열두 살 때 난 또 하나의 병이 겹쳤다. 간질병, 죽기보다 더한 참기 어려운 무서운 병. 간질증세가 발작되면 눈과 입. 얼굴전체가 숨도 못 쉬고 돌아가고 손과 발. 몸 전체가 떨면서 세게 틀어져야 하는 이 고통! 나와 같은 이런 아픔을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내 마음을 모를 것이다. 한 발짝만이라도 걸어 보았으면 하던 소원은 누워서 떡 먹기가 되었고 간질의 발작 증세 제발 이 증세만 멈춰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원이었다. 그래서 난 누구에게 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혼자 기도하며 빌어보곤 했다. “하나님 산신령님 제발 부탁합니다. 내 평생 갑갑한 방안에서 두 다리 앉은뱅이로 일생을 마쳐도 좋으니 제발 발작 증세 이 증세만 멈추게 해주시면 아무 소원도 바라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울면서 빌긴 했지만 한번 걸리면 고칠 수 없는 간질증세. 하는 수 없이 독한 진정제로서 싸우는 수밖엔 어쩔 수 없는 내 팔자, 고통과 슬픔의 우리 안에 갇혀버린 내 인생이 너무도 원망스러워 세상을 미워하며 몇 번이고 자살을 결심했지만 육체의 자유를 잃은 몸이 죽음 또한 내 자유가 될 수 없는 것,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에게 따질 수 없는 다만 죄 많은 병든 내 자신만을 탓하며 울어야 했다.

이런 고통 속에서도 나는 31세가 되었고 이젠 내가 죽을 때까지는 내 몸에 지닌 고통과 싸우면서 슬픈 눈물도 단물로 받아 마시면서 끝까지 슬픔을 이겨 보리라고 다짐하는 나에게 결혼하자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심한 고통 속에 시달리는 몸이기에 결혼이란 나에게 있을 수 없는 것. 그래서 결혼이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며 거절했지만 나의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상대편은 나보다 심한 일어나 앉지도 못하는 앉은뱅이도 있는데 나 같은 정도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며 자꾸만 결혼을 설득하는 바람에 난 조용히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언니 오빠가 있긴 하지만 내 일생을 같이 살아주진 않을 거고 더구나 모두 다 싫어하는 간질병을 몸에 지닌 병든 동생을 어느 형제가 좋아하며 책임져 줄 것인가? 생각하나마나 엄마가 눈감으면 난 어디 갈 때도 없고 설움둥이로 나에게 닥쳐올 더 큰 아픔과 슬픔을 생각하니 그만 목이 메어 소리 내어 울어 버렸다.
그래 나도 결혼을 하자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 상대가 나타났을 때 결혼을 해야겠다. 이런 결심으로 육체의 장애와 고통을 몸에 지닌 채 결혼을 하였다.
신랑은 한쪽 다리가 소아마비이긴 해도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고 생각 면으로 이해가 좀 짧다고 할까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충분히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난 믿고 우린 부부가 되었다.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나도 남자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여자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부부에게 귀한 선물까지 주셨다. 우리 부부도 엄마 아빠가 될 수 있다는 표시로 귀여운 딸아이를 주신 것이다.
엄마 아빠의 건강을 떠나서 아주 건강하게 태어난 딸아이 그 아기가 지금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우리 인숙이! 난 다시 한번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아기의 재롱에 조금이나마 슬픈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애기 교육문제는 시키면서 어떻게 키워야할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 나이 두 살 때부터 방안에서만 살아온 내가 애기는 어떻게 키워야 할지... 이런 줄 알았다면 애기 키우는 법이며 교육문제를 누구에게 한번 물어 보기라도 할걸..... 처음엔 애기가 생겼다는 기쁨에 정말 좋았는데 막상 아기를 낳고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몸에 뿌리 내린 간질증세는 기억을 떨어지게 하는 병이란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옳게 생각했던 것도 잊어버리고 엉뚱한 생각으로 아기를 키우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내 자신을 원망 또 원망하면서 얼마나 서러워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계속 울고만 있을 순 없는 것. 이왕 태어난 아기가 자라는 대로 키우면서 남들과 같이 해주지는 못해도 오직 거짓 없는 마음으로 키우리라는 마음으로 애기와의 외롭지 않는 시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어릴 때 성한 몸이 아닌 장애의 몸으로 거기다 어디서 어떻게 다쳤는지 지금은 계속 물리치료를 받아야할 허리 골병을 앓고 있다. 이런 몸이지만, 어려운 형편이다 보니 자기 담배 값이라도 벌기위해 무슨 일을 찾아보지만 허리 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보니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남편의 이런 마음을 생각하면 내 마음은 찢어지는 듯 아픔과 함께 슬픔이 몰려든다. 그러나 난 다시 슬픔이 아닌 웃음으로써 남편의 고마움을 생각해서 아이의 앞날을 위해 난 약속해 본다. 이젠 나도 한 남편의 아내로서 어떠한 어려움이 다시 또 겹치더라도 참고 견디며 슬픔이 닥칠 때 다시 또 울더라도 참는데 까지는 참고 살아 보리라고 다짐해본다. 이런 나의 다짐 속에 우리 인숙이는 나이 네 살이 되면서 엄마의 아픈 마음을 눈치 채는 것 같았다. 병든 내 인생이 너무 얄미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기라도 하면 같이 울어주고 우는 엄마를 달래는 그 마음 그 행동이 더한 나를 울려준다. 그리고 누가 과자나 맛있는 것을 주면 엄마와 같이 먹을 거라며 꼭 가져오곤 하였다. 엄마는 또 화장실 가기 힘들다며 변기통을 옆에 갖다 주고 또 비워주고 이렇게 엄마에 대한 사랑이 늘어가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엄마가 아닌 딸아이가 엄마이고 내가 딸 같은 기분이 든다. 인숙인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 내 휠체어 미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가끔씩 갑갑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내에 나가면 내가 오를 수 없는 높은 계단도 잘 올리고 잘 내리고 돌밭 길에도 어찌나 휠체어 미는 요령을 잘 아는지 자기 아빠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학교에서 나눠주는 빵과 우유도 자기는 먹지 않고 나에게 꼭 가져오곤 한다.
나에게 쏟는 그 사랑에 난 인숙이가 학교간 뒤에 혼자 눈물 젖곤 한다.

그런데 인숙이가 나를 다시 또 울린 것은 앞으로 자기는 병원 의사가 되어 엄마 다리 꼭 걸어 다니게 하고 엄마와 같은 장애인을 치료해 줄 거라고 맹세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가슴이 메었다. 엄마의 고통과 슬픔을 달래주며 노력하는 우리 인숙이에게 어떻게 난 보상 해 주어야 할까? 지금 현재까지 난 계속 간질 진통제를 먹고 있다. 하루도 약을 안 먹으면 정신상태가 이상해지고 발작이 일어날 것 같은 상태가 된다. 그러기 때문에 진통제를 계속 먹어야 하며 저녁엔 꼭 먹고 자야 한다. 오늘 저녁에도 그만 잊어버리고 약을 먹지 않고 누워 있는데 “엄마 약 먹어야지 자! 약 먹자 착하지 우리 엄마” 하면서 어린 아이 달래 듯 약을 먹여주고 잠이 들었다. 이렇게 엄마를 사랑하는 우리 인숙이에게 엄마로써 난 무엇을 해 주었을까? 당당하게 엄마라는 명칭을 달고서도 엄마답게 엄마 구실을 하지 못하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하고 하나뿐인 외동딸에게 고생만 시키는 못난 엄마! 그러나 이젠 여고생으로 성장한 사춘기 이지만 나에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내 딸 인숙이. 조용히 엄마 옆에서 잠자고 있는 우리 인숙이를 바라보는 내 두 눈엔 소리 없는 눈물이 자꾸만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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