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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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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우 수기

내친구 정란이

초등학교 3학년 새학기…….
외로워 보이는 한아이가 있었다. 남자아이들은 그 아이를 정신병자, 사팔뜨기라고 놀려댔다. 보다보다 안되겠어서 나는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너 이름이 뭐니?”
“어~~ 정란이야…….”
“나는 수진이라고 해…….우리 앞으로 친구하자”
정란이는 늘 아이들에게 구박을 당했고 난 그 아이를 보호해주려고 애를 썼다.

나와 친구였던 선주, 혜숙이도 정란이와 친구가 되어 우린 4총사가 되었다.
4총사에서 난 대장이었다. 혜숙이 선주, 정란이가 다투면 내가 “빨리 사과해 사과안하면 이제부터 친구 안 해 우린 절교야” 거의 협박을 해가며 우정에 금이 가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렇게 정란이와 난 5학년까지 계속 같은 반을 했다. 5학년 2학기 내가 살던 동네에 공단이 들어선다고 해서 우린 철거로 인해 이사를 가게 되었다. 전학을 가야만 했고 정란이와 난 그렇게 이별을 했다. 정란이는 너무 힘들어했고 나에게 연락 끊지 말고 자주 편지하자며 신신당부를 했다. 그땐 그럴 거라 약속했고 약속을 지킬 줄 알았다. 하지만 난 도시로 와보니 세련된 친구들과 어울리며 정란이는 나의 기억 속에서 점점 지워져갔다. 어느 날 선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학교 끝나고 정란이와 가고 있는데 정란이가 갑자기 쓰러지더니 이상한 행동을 했다고 했다. 난 너무 무서웠다. 3년 동안 항상 함께 했지만 내 앞에선 단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병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정란이의 증상은 다리를 약간 절뚝거리는 거 그리고 사시였다. 정란이 에게 간질이 있다는걸 그때 알았다.

그 이후로 거의 10년…….
정란이라는 아이는 내 기억 속에서 멀어져만 갔다.
23살에 난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생활하고 있던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세상에……. 정란이었다.
내가 그렇게 아껴줬던 친구, 모질게 연락을 끊은 채 외면했던 친구 정란이가 13년 만에 나에게 연락을 했다. 난 “정란이? 정란아~너 살아있었니?”
그렇게 우리의 인연을 다시 시작되었다.
철이 없어 정란이를 외면했던 나의 모습들이 너무 미안했고 다시 정말 잘해주고 싶었다. 어느 날 남편의 허락을 받아 정란이를 집으로 초대하게 되었다.
수원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어렸을 때 모습이 그대로인 정란이를 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집으로 와서 먹고 싶어 하는 음식두 해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의 정란이의 삶은 소설이었다.

지금부터 정란이의 사연을 쓰려고 한다. 정란이는 3살 때쯤 동네에서 놀다가 동네아이가 휘두른 연탄꼬쟁이에 뇌를 다쳐 그이후로 간질이 시작되었다. 정란이의 엄마는 다친 정란이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지 않았고 자꾸 토하고 아파하는 아이를 보며 그저 저러다 낫겠지…….하셨다고 한다. 그이후로 집에서 간질증상이 나왔고 발작을 일으킨 후 기억을 못하면 부모님께선 왜 기억을 못하냐며 때리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오면 엄마를 심하게 구타를 했고 정란이는 그렇게 가정폭력 가운데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내가 전학을 가고 6학년 때는 같은 반 여자아이들이 화장실로 유인해 가보았더니 남자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어 왜 이러냐고 했더니 재수 없다고 하면서 마구 발로 밟고 때렸다고 한다. 정말 마음이 아팠다. 6학년 때 교실에서 발작을 일으켰고 선생님은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셨다.
“정란이의 병이 무슨 병인지 알고 계시나요?”
“무슨 병인데요?”
“간질인 것 같아요. 부모님이 치료를 하셔야 될 것 같은데요”
정란이는 6학년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처음으로 간질약을 먹게 되었다.
정란이는 한문에 탁월한 소질이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을 졸라 중학교부터 서예학원을 다니게 되었고 지금까지 아무런 사회생활도 못한 채 서예학원만이 정란이의 전부다. 취업을 생각 안한 게 아니었다. 아는 분의 소개로 택시회사 사무실에서 경리를 하게 되었는데 거기서도 그만 발작을 일으켜 거의 쫓겨나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 이후론 자신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20대 초반엔 어느 날 초등학교 동창 남자아이가 전화를 해서 만나게 되었는데 정란이가 어렸을 때부터 10원짜리 하나라도 아끼며 지금까지 모아왔던 150만원을 사기를 당해 몽땅 날리고 말았다고 한다. 아버지께 말씀드려 그 집으로 찾아갔지만 사기 친 그 친구의 어머니의 손을 보고 정란이는 용서했다고 한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식물인간으로 누워만 있었고 어머니는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손이 정말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고 한다.
난 정란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겉모습은 장애를 가졌지만 속은 누구보다 꽉 차 있고 오히려 난 겉모습은 정상이지만 속은 장애인이구나…….라는 걸 느꼈다. 정란이는 1남 3녀 중 둘째다. 부모님은 지금 아무런 치료도 해주시지 않고 계시고 용돈도 제대로 주시지 않아 너무 힘든 상황이다. 정란이의 말에 의하면 건강한 자식들은 해달라는 거 다해주면서 정란이 에겐 아무것도 해주시지 않는다고 한다. 부모님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정란이는 지금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얼마 전이었다. 밤9시에 문자가 와서 보니 정란이었다.
“친구야 지금 급해 도움이 필요해”
문자를 받고 바로 전화를 했더니 세상에 서예대회에서 상을 받게 되어 서울 영등포에 혼자 오게 되었는데 갑자기 거리에서 발작을 하게 되었는데 깨어나 보니 지갑 안에 돈이랑 시골로 내려갈 기차표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더욱 놀란 건 그날 그런 게 아니라 그 전날 그래서 하룻밤을 아파트옥상에서 잠을 잤다는 것이다. 너무 춥고 배가 고파서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나에게 문자를 보냈던 것이다. 전날 바로 연락하지 않은 정란이 에게 나는 화를 많이 냈다. 나에게 미안해서 연락하지 못한 정란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바로 서울로 올라갔고 영등포 어느 대형마트에서 우린 만났다. 얼굴은 까칠했고 손은 꽁꽁 얼어있었다. 24시 김밥 집으로 가서 밥을 먹는데 정란이의 손이 이상했다. 우울증으로 인해 손목을 자해한 흔적이 보였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우울했으면…….마음이 아팠다. 집으로 와 정란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란이는 집이 오히려 편하지 않아 이 추운 겨울에도 학원이 끝나면 저녁까지 공원을 거닐다 부모님이 주무실 때쯤 들어가곤 한단다. 따뜻한 가정에서 편안함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정란이가 너무 안쓰러웠고 그래서 부쩍 요즘엔 간질을 많이 앓는다고 했다. 내가 도움이 된다면 도움이 되고 싶었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엉덩이까지 오는 정란이의 푸석푸석한 머리를 정리하러 미용실로 갔다. 적당하게 자르고 드라이까지 하니 정말 예뻤다. 전혀 화장도 하지 얼굴에 약간의 메이크업을 했더니 정말 화사하고 예뻤다. 내가 결혼한 몸이라 우리 집에 오래있지 못하는 게 너무 미안했다. 신랑 눈치도 보이고……. 그 다음날 역전으로 가 기차표와 입장권을 끊어 배웅을 해주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내 친구 정란아…….
이젠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나의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어.
너무나 마음도 넓고 편안한 내 친구…….네가 늘 행복했으면 좋겠어.
너의 병에 대해 알고 싶어 에필리아를 알게 되었고 마침 수기공모가 있어 이렇게 공모하게 되었어. 너의 권리도 알고 싶고 너의 권리를 받으며 살면 좋겠어.
지금까지 너무 힘들었잖아~~ 네가 빛 가운데 살길 원하며 이글을 마무리 해야겠다. 사랑해 내 친구~~!!

루다 2009.09.22
수진씨 같은 친구가있는 정란씨가 참 부럽네요..전어릴때부터 학교에서 발작을 하면 아이들이 피하거나 무섭다고 손가락질하기 일쑤였는데...저는 정란씨처럼 친구복은 없지만 부모복은 있는것 같네여.. 정란씨 힘네세여 우린 여느사람들과 다르지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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