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 남자 환자로 14세경부터 증상이 시작되었다. 증상은 갑자기 속에서 무엇인가 가슴으로 치밀어 올라오는 느낌이 들면서 정신을 잃게 되며 이 때 주위 목격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환자는 멍하니 두리번거리고 입맛을 다시는 모습을 1-2분간 보인다고 한다. 이러한 행동을 환자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며 단지 치밀어 오르는 느낌 이후에는 기억이 끊긴다고 설명하였다. 이렇게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간혹 밖으로 나가려고 하거나 서성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길을 걷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엉뚱한 곳에 와 있는 것을 발견할 때도 있다고 하였다. 초기에는 이러한 증상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관찰되었고 3개월에 한 번 정도는 이러한 증상 이후에 연이어 쓰러져서 전신을 다 떠는 발작도 보인다고 하였다. 초기 3년간은 약물 복용으로 거의 증상이 없이 잘 지낼 수 있었으나 그 이후 점차 약물 복용 중에도 증상의 횟수가 늘어났고 최근에는 3가지 약물을 동시에 사용하는 데도 한 달에 두 세 번의 증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2년간은 약물 복용으로 쓰러지는 발작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환자가 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엉뚱한 행동을 하는 이러한 발작이 전형적인 복합부분발작입니다. 이 때 입맛을 다시거나 두리번거리는 것, 또 의식 없이 걸어 다니는 현상,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모습 등이 같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복합부분발작에서 나타나는 자동증이라고 합니다. 환자가 증상 전에 배속에 서 치밀어 오르는 느낌은 전구증상이라고 하며 이 때 뇌에서는 이미 잘못된 신호가 발생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간혹 쓰러지는 발작은 전신강직간대발작인데 이 경우처럼 부분발작 환자에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를 특별히 이차성 전신강직간
대발작이라고 합니다. 뇌 한 부분에서 시작된 잘못된 신호가 뇌전체로 퍼지면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형태의 복합부분발작은 특히 측두엽간질(뇌 옆부분에서 발작이 시작되는 형태)에서 잘 관찰됩니다. 측두엽간질은 약물 난치성으로 가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이 환자의 경우 여러 가지 약물을 충분한 기간 동안 사용하였음에도 증상이 계속되므로 약물 난치성에 해당되며 이 경우 수술 치료의 대상이 됩니다(약물에 의하여 잘못된 신호가 뇌 전체로 퍼지는 것을 막을 수는 있었으나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복합부분발작은 막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측두엽간질은 자주 간질 수술의 대상이 되는 간질증후군입니다.

이 환자의 몇 가지 검사 소견을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자기공명영상(MRI, 그림 1)에서는 좌측 해마(화살표 A 표시: 사진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부분이 뇌의 왼쪽에 해당됩니다)가 반대쪽(화살표 B)에 비하여 크기가 작고 더 하얗게 보입니다. 이는 좌측 해마라는 뇌의 한 부분의 신경세포가 손상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양전자 단층촬영(PET, 그림 2)에서는 좌측 측두엽(화살표 A) 부위가 반대편(화살표 B)에 비하여 어두운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부위가 발
작 초점에 해당되어 뇌 기능이 감소되었음을 표시합니다. 발작기단일광전자방출촬영기(SPECT)는 동영상-뇌파 검사를 하면서 발작이 있을 때 동위원소가 주입되도록 하여 뇌영상에서 발작 초점이 나오도록 하는 것입니다(그림 3). 사진에서 보면 좌측 측두엽 부위(화살표 A)가 반대편(화살표 B)에 비하여 더 하얗게 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발작이 시작되는 부위가 발작시에 많은 뇌혈류를 필요로 하게 되며 사진에서는 발작 초점으로 피가 많이 몰림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환자는 동영상-뇌파 검사를 시행하여 발작이 왼쪽 측두엽에서 시작하는 것을 확인하였고 모든 검
사결과가 일치하므로 좋은 수술 대상이 됩니다. 검사결과에 따라 환자는 왼쪽 측두엽의 손상 받은 해마를 포함하여 4 cm를 절제하였으며 이후 발작이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모든 간질 수술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검사결과에 따라 성공 확률이 달라지게 되는데 이렇게 많은 검사 결과 일치하는 간질의 경우 성공확률은 매우 높습니다.

(이상건, 서울대병원 신경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