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으로 15세부터 항뇌전증약제를 복용하고 있던 여성이 예정된 외래 일정을 앞당겨 뇌전증 클리닉을 방문하였습니다. 현재 만나고 있는 좋은 분이 있어 내년쯤 결혼 이야기가 오고가는 상황인데, 자신의 병에 대해서 교제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어찌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지 어렵고, 또 약을 오랫동안 먹어왔는데 결혼 후 바로 임신을 준비해도 되는지 염려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환자의 뇌전증은 라모트리진 100mg을 아침저녁 두 차례 복용하면서 최근 발작 없이 잘 조절되고 있었습니다. 환자분께 원하시면 약혼자와 함께 내원하여 질환에 대한 설명을 들으시도록 안내해드리면서 결혼 및 임신 준비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상황을 설명하였습니다.
1. 결혼 대상자에게 자신의 질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전적으로 환자분 본인의 결정에 의한 것이지만, 가급적이면 결혼 전에 약혼자에게만큼은 이야기해 두는 것을 권장합니다. 특히 발작이 자주 있는 경우에는 숨긴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렇지 않더라도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고, 향후 임신, 출산 등 중요한 시점에서 환자의 병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평생을 함께 할 사람에게 자신의 건강과 관련된 중요한 이슈를 공유하지 않고, 그 부분에서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야기를 직접 꺼내는 것이 어렵다면 담당 선생님의 도움을 요청해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2. 임신 준비는 결혼 전부터 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절이 매우 잘되고 있는 경우이고 현재 복용 중인 항뇌전증약제가 태아 기형 유발 가능성이 높은 약제라면 임신 전 미리 줄여보는 시도를 해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복용하고 있는 항뇌전증약의 종류에 따라서는 별다른 용량의 조절 없이 임신을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엽산제를 임신 시도 3개월 전부터 복용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3. 결혼 후 임신을 바로 시도하지 않을 경우라도 담당 선생님과 상의하면 도움이 됩니다. 임신을 미루기 위한 적절한 피임방법을 선택할 때 의학적 도움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일부 항뇌전증약제는 경구피임약의 효과를 현저히 떨어뜨릴 수가 있습니다.
4. 임신이 되었을 때, 미리 뇌전증 담당의와 상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항뇌전증약제를 중단하거나 감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임신 초기 대발작이 여러 번 발생하면 아이와 산모가 모두 위험할 수 있습니다. 임신을 확인하는 대로 바로 뇌전증 주치의에게 오셔서 상의를 하는 것이 안전하겠습니다. 약전이나 인터넷에는 항뇌전증약제의 태아기형유발 가능성이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약 복용에 대한 위험도와 이익을 고려하여 환자의 개별 상황별로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조건적인 약물 중단은 위험합니다.
대다수의 뇌전증 환우들은 건강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담당 주치의와 미리 상의하셔서 생애 중요한 순간들을 행복하게 맞이하시기 바랍니다.